파워볼실시간
“1660화 마지막 말
검은 회오리 안으로 진입한 엽현과 아명 앞에 펼쳐진 것은 어느 기이한 공간통로였다.
공간통로!
두 사람은 공간의 흐름을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이는 엽현이 다소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만약 차원육신이 아니었더라면 이 통로 안에서 살아남기 어려웠으리라.
“이유계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엽현이 정면을 응시하며 묻자 아명이 고개를 저었다.
“몰라. 나도 처음이니까.” “너도 와 본 적이 없다고?” 엽현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아명을 쳐다보았다.
이에 아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주인이 봉인을 설치한 이후로 우리 또한 이유계로 넘어갈 수 없었다.”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도일의 내력에 대해 알고 있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혹시 도일이 이유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건가?”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아명의 질문에 엽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시간에 대한 그녀의 응용력과 이해도는 절대 평범한 게 아니었어. 어쩌면 시간법칙 보다 더 뛰어날지도 모르지.” “확실히… 그렇긴 하지.” “우주법칙보다 더 시간을 잘 이해하고 있는 존재. 그건 이유인이 아닌가?” 이에 아명이 반문했다.
“만약 정말로 이유인이라면? 어쩔 셈이지?” “…….”
엽현은 침묵했다. 엔트리파워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분명 이상한 점이 있었다.
도일이 이유인이라면 왜 자신들의 편에 서서 이유인들을 막으려 하는 걸까?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엽현이 고민에 빠진 이때, 아명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도일이 뭘 하려는 건지 조금은 알 것 같군.” 엽현은 아명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명은 EOS파워볼 입을 꾹 닫은 채 정면만을 주시할 뿐이었다.
같은 시각.
한 여인이 공간 통로의 끝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다름 아닌 도일이었다.
잠시 후, 걸음을 멈춘 로투스바카라 그녀 앞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성공이 펼쳐졌다. 다만, 이 성공은 기이한 검은 부적으로 뒤덮여 있었다.
봉인!
바로 오래전 엽신이 설치해 놓았던 봉인이었다.
이유계로 진입하려면 반드시 이 봉인된 구역을 지나쳐야만 했다.
검은 부적들을 보고 있던 도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봉인이 약해진 로투스홀짝 원인을 알아냈던 것이다.
분명 엽현이 형님이라 불렀던 검수의 짓이었다.
검수 역시 이유계로 가기 위해 이곳을 지났을 것이다.

그때, 강제로 진입을 시도하여 봉인에 타격을 주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바로 이때,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허영 하나가 나타났다.
체형을 오픈홀덤 보아하니 여인인 듯했다.
다만, 여인이 위치한 곳이 시공간의 중심인지라 이쪽에서는 제대로 된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도일이 먼저 웃으며 말을 걸었다.
“대화 좀 할까?”
허영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넌 그럴 자격이 없다.” “그를 내버려 둬. 그럼 이유족도 험한 꼴을 당하지 않을 테니까.” “…아무래도 네 본분을 망각한 모양이로구나.” “하하, 그렇지 않아. 반대로 내 신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이유족이 살기 위해선 그를 포기해야만 한다.” “당시 그의 손에 죽은 사람이 만 명도 넘는다. 벌써 잊은 건가?” “…….”
허영의 음성은 점점 격앙돼 갔다.
“기회는 그때도 줬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제안을 묵살했었지. 그러니 더 이상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거다. 그런데 너는… 네가 이쪽에 남은 이유를 잊은 것 같군. 놈을 죽이기는커녕 수련을 돕고 있다니…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나?” “아, 물론. 정확히 알고 있다.” “글쎄, 아무래도 모르는 것 같은데? 십만 년 전에 우리 부족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 생각한다면 그런 행동을 할 순 없지.” “…….”
“당시 너희 둘 사이에 어떤 감정이 존재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부족을 잊어서야 되겠느냐?” 도일이 허영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를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러 온 게 아냐. 현실을 일깨워 주려 온 거지. 그때의 주인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려 했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 그는 물론 그의 배후 또한 신경 써야 하지. 자칫 잘못하다간 이유족 전체가 날아가 버리고 만다.” “청아라는 여인을 말하는 건가?” 순간, 도일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그녀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
“후… 그렇다면 말이 빠르겠군. 그녀는 이유족을 이용해 그를 훈련시킬 생각이야. 가장 좋은 건 그가 스스로의 힘으로 버텨내는 거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땐 그녀가 등장할 거다. 그 여자가 출수하면 당해 낼 자신 있나?” 허영이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강하다면 왜 진작 이유계에 도전하지 않은 거지?” 허영의 말에 도일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청아가 이유계를 찾지 않은 이유는 그럴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실력은 이미 이쪽 우주에 속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에게 이유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있을까?

청아가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자신의 오빠를 성장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자신이 아무리 이 점을 설명한다 해도 들어 먹을 이유인들이 아니었기에 도일은 그저 한숨만 쉴 뿐이었다.
“도일,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봉인을 해제한다면 족장은 그 공로를 인정해 네가 저지른 과오를 묻지 않을 거다.” 도일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할 수 없어.”
바로 이때, 허영이 도일을 향해 급강하하더니, 손을 쭉 뻗어 도일의 목을 움켜쥐었다.
“정녕 미쳐버린 게냐! 저 하등한 생명체를 위해 부족을 배신하겠다고!?” “그런 식으로 그를 모욕하지마.” “그게 아니면 뭐란 말이냐! 쓰레기라도 불러주랴?” 바로 이때, 도일이 무릎을 한껏 들어 올렸다.
쾅-!
복부를 가격당한 허영은 순식간에 뒤로 튕겨 나갔다.
이 충격으로 사방의 성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쳤다.
날아가던 허영이 채 자세를 잡기도 전, 어느새 접근한 도일이 맹렬히 주먹을 휘둘렀다.
쾅-!
이번 일격으로 허영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도일! 정녕 살고 싶지 않은 게냐!” “…뭐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 도일의 무덤덤한 말투에 허영이 코웃음을 치며 소리쳤다.
“네가 죽으면 그다음은? 네 동생은 어쩔 테냐? 너 하나만으로 부족해서 그 아이까지 죽일 셈이냐!” 이 말을 듣자, 도일의 표정이 점점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때 약속했잖아! 그 아이를 풀어주겠노라고!” “흥!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만약 그를 죽이지 않으면 네 동생이 대신 죽음을 맞이할 거다!” “허튼소리 하지 마! 그 아이를 건드리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 “하하하! 도일,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구나. 네 도움이 아니면 우리가 봉인을 풀지 못할 것 같으냐? 그때가 되면 설령 그가 완전히 각성한다 할지라도 우릴 막을 수 없다. 그럴 바에야 네 손으로 해결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편한 일이 아니냔 말이다!” 도일의 두 주먹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잠시 후, 흥분을 가라앉힌 도일이 조용히 말했다.
“그 아이를 보게 해 줘.” “…잠시 기다려라.”
허영은 이 한 마디와 함께 자리에서 사라졌다.
도일은 숨을 고르며 두 눈을 감았다.
바로 이때였다.
“도일!”
누군가의 음성이 뒤쪽에서 들려왔다.
도일이 돌아서자, 엽현과 아명이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벌써부터 와 있던 두 사람은 두 사람의 대화를 똑똑히 들은 상태였다.
도일을 바라보는 아명의 표정은 벌써부터 복잡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이유인이었구나!” “하하, 언제부터 알았지?” “방금 전부터!”
도일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난 이유인이다.” “그럼 이쪽 우주에는 어떻게 오게 된 거지? 처음부터 모두 계획돼 있던 일인가?” 도일이 이번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사고였다. 주인을 만나게 된 것도 모두 우연이었지. 물론… 그의 입장에서는 불행의 시작이었겠지만.” “그래서? 이유인들이 주인을 배신하라고 협박했던 건가?” 도일이 옅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이유가 어쨌든 배신한 건 사실이지. 이유족으로서는 주인을 죽이기 위해서 나를 이용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으니까.” 도일의 미소가 점점 씁쓸하게 변했다.
“바보 같은 주인은 이미 내 정체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조금도 경계하지 않았어.” “그럼 네 본체는 지금 어디 있지?” “내 본체…….”
도일은 고개를 저으며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이때 엽현이 물었다.
“이유족이 네게 요구하는 건 날 죽이고 봉인을 해제하는 거겠지?” 도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스스로 봉인을 해제하려면 최소 몇 년이 걸리지만, 내가 나선다면 오늘이라도 당장 해결할 수 있지. 아마 저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것 같아.” “뭘 기다리지 못한다는 거지?” 아명의 질문에 도일이 머뭇거리더니 결국 입을 닫고 말았다.
아명이 재차 물으려 할 때 엽현이 그녀를 막으며 나섰다.
“그 편지를 볼 수 있을까?” 편지!
도일이 갑작스레 태도를 바꾼 것은 엽신이 남긴 편지를 읽고 난 후였다.
엽현은 매우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었기에 도일의 생각을 한순간에 바꿔놓을 수 있었던 걸까?
도일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중에 보여주마.”
“지금은 안 되는 건가?” 도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엽현이 또 무어라 말하려는 이때, 갑자기 세 사람 뒤쪽의 공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시선을 돌리자 세 사람 앞에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치마 차림의 여인은 도일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엽현은 한눈에 도일의 동생임을 알 수 있었다.
도일은 표정 없는 시선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여인을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아고(阿古), 별일 없었지? 그렇지?” “…….”
아고라 불린 여인은 고개를 낮게 숙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때, 도일이 아고의 손을 잡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안해. 언니가 되어서 곁에 있어 주지도 못하고… 불쌍한 것…….” 바로 이때, 아고의 소매 사이에서 비수 한 자루가 튀어 나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 비수는 그대로 도일의 복부 깊숙이 날아들었다.
쾅-!
비수가 복부를 관통한 순간, 도일의 몸 안에서 폭발이 일더니, 그녀의 육신이 빠른 속도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 장면을 보자 엽현과 아명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엽현이 급히 출수하려는 순간, 도일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가, 가까이 오지 마! 너는 이 비수에 담긴 세월지력(時間之力)을 감당하지 못해!” “도일!”
이때, 아명이 엽현의 팔을 낚아챘다. 그녀 역시 상대의 무기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상태였다.
이때, 도일을 응시하던 아고의 눈에서 뜨거운 액체가 흐르기 시작했다.
“왜… 왜! 왜 저런 저급한 종족을 위해서 부족을 배신한 건데! 도대체 왜!” 도일은 사라져가는 상황에서도 힘겹게 손을 들어 아고의 뺨을 쓰다듬었다.
“왜냐하면, 언니가 저 사람을 좋아해.” “언니는 미쳤어! 인간이잖아! 저급한 생명체일 뿐이잖아! 어떻게 인간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건데! 그거 알아? 언니 덕분에 우리 가문이 얼마나 수모를 당했는지! 모르지! 절대 모를 거야!” 말하는 사이, 아고가 거칠게 손목을 비틀었다.
비수는 더욱더 깊게 파고 들어갔고, 도일의 소멸 속도 역시 더욱 가속됐다.
도일은 고통스러운지 미간을 찌푸리더니, 아고를 향해 억지로 웃어 보였다.
“바보 녀석… 사랑에 빠지는 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냐…….” 시선을 돌린 도일은 엽현을 향해 애처로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었는데… 하지만 이걸로 만족해야지…. 한 가지 부탁이 있어…. 절대 내 본체를 찾지 말아줘… 부활시킬 생각은 더더욱 하지 마… 그날 이후로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어. 제발 이대로… 고통 없이 가게 해 줘…….” 도일은 웃는 얼굴로 성공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빚은 갚은 셈이군.” 말을 마친 순간, 그녀의 몸이 무수히 많은 점으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 순간, 그들 앞에 보이지 않는 공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봉인!
도일은 마지막 생명력을 사용해 봉인을 강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때, 멍하니 있는 엽현 앞으로 편지 한 장이 펄럭이며 떨어졌다.
편지에는 구구절절한 내용 대신 단 한 마디만 있었을 뿐이다.
‘사랑해.’
십만 년 전, 어느 나무 아래.
책을 보고 있던 여인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무릎을 빌려주고 있던 남자를 쳐다보았다.
“나 사랑해?”
순간 표정이 굳은 남자는 보던 책으로 여인의 머리를 가볍게 툭 내리치더니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너도 좋아하고, 아명이도 좋아하고 여기 있는 모두 다 좋아해!” “칫….”
여인은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녀는 볼 수 없었다.
자신을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표정을.”